위틀리오-코탱의 골목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 가슴에 담은 한 개의 노래와 한 개의 글
나는 땅끝까지 가 보았네
물이 있는 곳 끝까지도 보았네
나는 하늘 끝까지 가 보았네
산 끝까지도 가 보았네
하지만 나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네.
-인디언 나바호족 노래
한 개의 노래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께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 내가 친구가 될께
네가 만약 기쁠 때면 내가 웃음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여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윤복희 노래 여러분
他人에게 세워진 벽
참 많이도 외로워지는 때가 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할 무렵이다. 한해를 마무리할 무렵 꼭 하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수첩을 정리하는 것이다. 수첩의 주소록을 넘길 때마다 이런저런 만나고 스쳐갔던 사람들의 이름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연락해야지 하는 생각은 새해를 맞이하고 며칠 지나면 도로묵이다. 나 자신도 어느 누구의 수첩에서 지워질 것이란 생각은 일상을 슬프게 한다. 애써 지우려 하지 않아도 시간은 가끔 망각의 강물에 몸을 담근다.
부평에 살았던 적이 있었다. 햇수로 이 년 정도 살았는데 아래층에 군산 아줌마라 불리는 분이 살고 계셨다. 그 아주머니에겐 참으로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내 직업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남들 일 나가는 시간에 잠 자고 남들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질 때 출근하는 내가 아주머니에겐 참 요상한 관찰 대상이었나 보다. 어느 날 그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그 아줌마. 아내에게 “아저씨 직업이 뭐당가?” 아내는 그냥 웃고 말았다. 그래 십육년이 넘도록 나의 직업은 그 군산아줌마의 궁금증만큼 일상적인 셀러리맨의 직업과는 달랐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 하고 낮에 쉬는 일상 사이클이 정반대인 직업을 지금까지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겐 친구들이 별반 남아 있지 않다. 직업적으로 만나는 사람이야 있겠지만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고 나의 기쁨과 슬픔이 될 친구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남 출근할 때 집에 있고 남 퇴근할 때 일을 시작하는 직업은 만남 자체를 엉뚱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웃 사촌이라고 서로 얼굴도 맞대야 정이 생기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얼굴을 맞대기는커녕 전화조차 뜸할 정도로 일에 묻혀 지냈다. 얼굴도 목소리도 뜸하면 마음도 뜸해진다. 그러면서 하나 둘 나의 친구들은 나와는 관계 없는 삶으로 떠나갔다.
윤복희 씨의 <여러분>은 정말 좋아하는 노래다. 예전에 같은 직장에 있던 여선생 하나가 회식 자리에서 이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데 살아오면서 이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르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가사도 가사려니와 나는 이 노래를 윤복희가 아닌 다른 가수가 부르는 것을 생각하질 못한다. 요즘 리바이벌 붐을 타고 국내가수들이 선배 가수들의 곡을 다시 부르는데 웬지 처음 부른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익숙함의 차이일까. 노래 하나도 제 주인이 있는 것이다. 참 많은 험난함을 건너 온 가수 윤복희.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이 노래를 만난다. 그녀의 쉰 목소리만큼이나 그녀의 삶은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 험난한 삶들이 이 노래에 있다.
우리의 삶은 한 두개의 벽을 가지고 있다. 그 벽은 보이지는 않으나 자기 자신 안에 혹은 자신 밖에 보이지 않게 단단하게 채워져 있다. 게다가 그 벽을 허물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애써 자위해 본다. 사는 게 바빴었노라고. 그래도 외롭고 부끄러워진다. 벽은 내어 두고 바빴다니. 작년 한해 참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전화도 하지 않았고 받지도 않았다. 그저 내 삶이려니 하고 일주일의 절반 이상을 술에 몸을 담그고 살았다. 하는 일도 잘 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내 안에 들어와서 웅크리고 나갈 줄을 몰랐다. 내 몸은 포화 직전까지 갔다. 불안감과 초조의 삶이 무형의 덧을 놓고 있었다.
40이라는 숫자로 내 삶을 규정할 무렵. 갑자기 그 숫자가 두려웠었다. 기실 나의 삶 가운데 삼십대의 삶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신기한 일이다. 그 이전의 것들은 잘도 기억하면서 왜 가장 가까운 시간은 망각되었는지. 그런데 사십이 되면서 그 잊혀진 것의 결과처럼 부유하는 삶이 보였다. 내가 잊어온 세월 동안 이루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내 사십은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그토록 나를 힘들고 지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사십을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나’가 아니라 나의 주위의 사람들의 힘겨움이다. 가장이 흔들리는 집. 아내는 불안해 했고 아이들은 표현은 안 해도 그 무거운 집안의 무게에 질식해가고 있었다. 그것은 나로부터의 시작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나의 아픔에 갇혀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그것은 극도의 이기주의화된 자신의 모습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 둘 쌓아올린 벽들 위에 시멘트를 발라 굳히는 벽. 그 벽안으로 들어서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 이것을 나는 주위 탓으로 자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잃어버리면서.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배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천막 밖으로 나가기 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만물을 지으신 이에게 ‘저를 용서하소서’ 하고 기도하라고. 세상 만물에게도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 당신이 발자국으로 풀줄기 하나를 구부러뜨리기 전에. 그런 다음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가 다른 생명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발견해야 한다.
-지구 걷기 모임에서 행한 연설, 루벤 스네이크
삶이란 혼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삶의 탯줄을 끊는 순간부터 우리는 ‘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그 관계의 시작은 ‘자신’이다.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없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벽을 허무는 자는 자신이 되어야 한다.
한 개의 글
내 생각의 실마리는 흔히 버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시내버스 안에서 나는 삶의 밀도 같은 것을 실감한다. 선실(禪室)이나 나무 그늘에서 하는 사색은 한적하긴 하지만 어떤 고정 관념에 갇혀 공허하거나 무기력해지기 쉬운데,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종점을 향해 계속해서 달리고 있는 버스는 그 안에 실려 가는 우리에게 인생의 의미를 적잖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산다는 일이 일종의 연소요, 자기 소모라는 표현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함께 타고 가는 사람들의 그 선량한 눈매들이, 저마다 무슨 생각에 잠겨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는, 그래서 조금은 외롭게 보이는 그 눈매들이 연대감을 갖게 한다. 이 시대와 사회에서 기쁨과 아픔을 함께하고 있다는 그러한 연대감을.
나는 얼마 전부터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택시를 타지 않는다. 탈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타고 싶지가 않아서다 주머니 실력도 실력이지만, 제멋대로 우쭐대는 물가의 그 콧대에 내 나름으로 저항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이유는 택시 안에서는 연대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돈을 더 내면 편하고 신속하게 나를 운반해 주겠지만, 그때마다 이웃과의 단절을 번번이 느끼게 된다. 붐비는 차 속에서 더러는 구둣발에 밟히기도 하고 저고리의 옷고름이 타지는 수도 있지만 그런 데에서 도리어 생명의 활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어 견딜 만한 것이다.
- 법정 스님의 글
‘내’ 안에 ‘너’ 있다
버스를 타 본 지가 오래되었다. 자가용 때문이다. 지금은 전철의 노선도 모른다. 버스 요금이 얼마인지도 잊어버렸다. 참으로 삭막한 삶이다. 자가용이란 무엇인가. 자가용의 ‘자’라는 글자는 ‘自’이다. 그래서 自家用을 풀어 보면 ‘스스로(혼자서) 쓰는 집’이다. 어색한가. 버스는 ‘여럿이 쓰는 집’이다. 그런데 자가용은 혼자서만 사용한다. 철저한 문명의 냄새를 갖고 있는 기계다. 편리함을 담보로 인간을 지워버린 그것이 자가용이다.
자가용 속에서는 그래서 누구나 ‘혼자’ 존재한다. 그 세계는 문명이 만들어 놓은 편리한 인큐베이터이다. 우리는 그 집에서 고립화된다. 그리고 그 고립에 익숙해진다. 습관적인 편리함의 본능 때문이다. 그 고립은 타인을 밀어내고 점차 강하게 그의 삶을 규정한다. 종국에는 그 고립은 타인의 삶을 경시하고 무의식적으로 자기만의 가치와 그 기준을 절대화시킨다. 비오는 날 내 차 때문에 옷을 버린 보행자의 불행은 피하지 못한 그의 잘못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
불행한 일이다. 타인의 삶이 깃들지 못하는 삶. 그것은 생명의 새가 깃들지 않은 숲과도 같다. 신성함을 잃어버린 숲에는 야산의 정상까지 집들이 세워진다. 문명의 집들이 숲을 밀어내고 인간을 밀어낸다. 거대한 아파트 문화는 골목을 없앴고, 골목이 없어진 삶은 이웃을 잃어버렸다. 자기만의 삶, 자기만의 세계만 소중해진다. 따라서 법정 스님이 택시를 타지 않는 이유는 ‘삶’이 없기 때문이다. 불편함이 주는 인간 관계가 사라진 택시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수도자의 수행과 부처에게 가는 길은 버스를 타는 것이다.
왜 이런 가치가 점점 더 소중해지는가. 그것은 그러한 가치가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대지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아들들에게도 일어난다. 사람이 삶의 거미줄을 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 역시 한 올의 거미줄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가 거미줄에 가하는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인디언 대추장의 연설>” 한 사람의 삶을 지워버리고 자신만이 살아 있을 때 그 자신 역시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는 死者의 운명을 두드린다. 사람의 운명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타인의 삶과 얽힌 거미줄같은 것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버린 늙은 여가수 윤복희. 그러나 그녀는 아직 젊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수많은 타인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 그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다. 타인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타인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될 때 자신은 타인이고 타인은 자신이다. 요즘 말로 ‘내’ 안에 ‘너’가 있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자신의 아픔조차 혼자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비운 자리에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 내 아픔마저 타인을 만나는 하나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쁘게 외쳐 보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2005.01.29 새벽편지-2012년 조금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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